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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네…?

듣지 못했을 리는 없는데, 차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지 진호가 되물었다. 평소 자신의 명령에 되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선우는 이번엔 진호를 생각이 없었다. 그는 비어 있던 손으로 아까 뒀던 젖꼭지를 잡고 비틀었다.

“아!

“말 들어야지, 나비야. 내밀라고 했어, 내가.

진호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선우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선우는 자기의 손목을 잡고 있는 진호의 손을 곁눈질하더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

손에 힘을 때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나서야 진호가 조금 떨리는 손을 얌전히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선우는 모습에 칭찬하듯 입을 가볍게 맞춰 주고 이번엔 진호의 젖꼭지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아아! ,

작정하고 세게 잡아당긴 손속에 진호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까의 기억 때문인지 그의 손은 선우의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혀.

선우는 억울함이 담긴 진호의 눈을 마주치며 그가 잊어버린 명령을 다시 말해 주었다. 수줍게 내밀어진 혀를 선우는 웃으며 손가락의 힘을 빼고 발갛게 젖꼭지를 달래듯 살살 만져 주었다. 진호의 몸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으나 선우의 안에 갇힌 상태였기 때문에 몸짓은 무의미했다.

“으…, 흐….

혀를 내밀라고 놓고 선우의 혀는 진호의 입가만 스치듯 핥았다. 그러면서도 진호가 조금이라도 혀를 집어넣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젖꼭지를 아프게 비틀어 올렸다. 강도는 점점 세져서 마지막엔 아픔을 이긴 진호가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쪽으로 가슴을 내밀며 아픔을 줄이려고 했을 정도였다. 진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착하다. 예쁜 나비.

선우는 눈동자엔 갈등이 가득한데도 시키는 대로 혀를 내밀고 있는 진호가 사랑스러웠다. 상을 주듯 간질이던 것을 멈추고 진호의 혀를 삼켜 빨아주고는 그대로 그의 입안으로 혀를 넣어 안쪽을 쓸어 주었다.

선우는 진호의 몸을 가두고 있던 팔을 풀어 어깨를 잡고 밀었다. 뒤로 떨어지는 느낌에 놀랐는지 진호가 다급하게 선우의 가슴께의 가운을 잡았다.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것이 느껴져 선우는 입술을 맞댄 목을 울리며 웃었다. 그리고 일부러 진호를 완전히 눕히지 않고 허공에 있도록 만들었다.

진호는 뒤에 소파가 있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있는 힘껏 선우에게 매달렸다. 그는 진호의 질끈 감은 눈을 보며 키스를 이어 갔다.

“흐, , 잡아…. 무서, .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한참 이어지던 둘의 키스는 진호의 애원으로 끝이 났다. 진호는 도리질을 치며 선우에게 애원했다. 선우는 감히 먼저 입술을 버린 진호를 혼내 버릇을 가르쳐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울먹이는 눈이 귀여워 지금은 봐주기로 했다. 그는 진호의 목뒤를 손으로 받히고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눕히며 나직하게 말했다.

“나비는 다정한 좋아하지?

당연한 물음에 진호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미소 지은 선우는 진호의 코에 코를 비비고 물었다.

“사랑받는 것도 좋아하고. 그렇지?

이번에 진호는 조금 울먹거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선우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조금 놀랐지만, 재촉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진호의 흐느낌이었다.

“흐윽….

선우는 진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진호의 감정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가 했던 말을 돌이켜 봐도 그렇게 문제 되는 말이 없었고, 애초에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호는 이제 손을 위에 올려놓고 아주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흐읍…. 흐어어엉!

선우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오열하는 진호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뱉었다. 자고 일어나서 괜찮은 알았는데 아직 발작의 여파가 남아 있었나 보다. 평소에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입을 다물고 인상을 찌푸리며 억지로 참아내던 진호는 어디로 가고, 건들면 바로 울음이 터지는 울보만 남아 있었다.

선우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진호를 불렀다.

“나비야”

부름에 진호가 꾸물꾸물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그리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선우를 올려 보며 말했다.

“나, 아니 저는. 저는 드릴 것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진호의 목소리는 엉망진창으로 갈라져 있었다.

 * * * 

사랑. 그건 언제나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주려던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아니다. 마찬가지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다. 사랑이 아닌 것을 마음대로 사랑으로 치환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받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 나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그들의 관심과 친밀감이었다. 내가 위험에 처했음을 알아챌 있을 만큼의 관심과 나를 구하러 와줄 정도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그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단지 나는 평생 번도 얻어 보지 못해 것들이었기에 값어치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했다.

채예령에게 받은 정보를 이용해 그들과 만날 있는 계기를 만들고,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요리 실력을 발휘해 그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도 뒤로한 최대한 친근하게 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모를 없었던 그들의 억지도 나는 모른 넘겼다.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원칙은 있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있었지만 내가 없는 가지 것들이 있었다. 아주 현실적인 것들을 예로 들자면, 내가 생활할 돈과 우리 집과 목숨 같은 것들이었다. 다행히 그들도 그것들은 요구하지 않았다. 문제는 현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무형의, 가치적인 것들에 있었다.

나는 다섯 누구에게도 마음 자락 생각이 없었다. 이성적인 호감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도 나는 그들과 ‘진짜’로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이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선을 넘었다. 아니, 그들의 관심에 취한 내가 선을 지웠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긋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호 .

민선우는 가볍게 물었음을 안다. 야릇한 분위기에서 으레 속삭이는 달콤한 말이었겠지. 또한 평소라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넘겼겠지만, 아까 복도에서 흔들린 정신이 아직 단단해지지 못했었나 보다.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 어딘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울음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꽁꽁 숨겨 두었던 마음이 조금 새어 나가 버렸다. 내가 너희들에게 있는 것은 이미 버렸다고. 그게 다라고. 나는, 이상 것이 없다고. 다행히 앞의 말은 삼켰지만, 뒤의 말은 뱉어 버렸다.

안에서는 미쳤냐고 외치는 이성과 서러움을 토해 내고 싶은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민선우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같아도 아까 분위기에서 상대가 갑자기 오열한다면 저런 얼굴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녀석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조금은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민선우는 하필 약해져서 밖으로 드러나 버린 나의 역린을 건드렸다.

“하…. 자꾸 울어요.

나도 미칠 같다. 내가 이러지 싶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창피하고, 서럽고, 슬펐다. 어떻게든 진정해 보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는데, 몸이 들렸다. 놀라서 눈을 뜨니 민선우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민선우의 다리 사이에 옆으로 앉아 아이처럼 안겨 있는 자세가 되었다.

단단한 팔에 비스듬히 기댄 멍하니 녀석을 올려다보는데 커다란 손이 다가와 눈물로 젖은 얼굴을 닦아 주었다. 다른 손으로는 엉덩이를 토닥이며, 녀석은 다정한 낯으로 나긋하게 나를 달랬다.

“그만 울어요, 진호 . 이러다 짓무르겠어요.

민선우의 의도와는 다르게 거의 멈춰 가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녀석의 행동이 아팠다. 다정한 말이 너무 아팠다. 가슴이 너무 아려 와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까처럼 헛소리를 늘어놓을 같아 나는 황급히 입을 막고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어 버렸다. 그리고 계속 되뇌었다.

‘안 . 후회할 거야.

문득 해맑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마음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같았다.

“뭐가 그렇게 슬프고 어려워요, 진호 씨는. 우리가 원하는 같길래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요.

너희들이 원하는 같아서 힘든 아니다. 것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었다.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버릴까 이러는 것이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마음이 누군가에겐 휴지 조각처럼 쓸모없는 것임을 또다시 확인 받을까 이러는 것이다.

주지 않는 것이 어려웠다. ‘관심’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를 뒤집어씌운 나를 서로에게 빼앗기기 싫은, 번쯤 가져 보고 싶은 인형처럼 취급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나에게 점점 다정해지고, 아픈 나를 보듬어 주고, 내가 위험할까 걱정해 주고, 무서운 상황에 달려와 구해 주고, 이렇게 툭하면 나한테 닿아 오는 너희들에게 흔들려서 슬펐다.

애써 외면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금씩 기대와 희망을 키워나갈 것을 알아서 벌써부터 지쳤다. 왜냐하면, 기대와 희망의 끝은 좌절과 허무라는 것을 알기에.

              

62

“제가,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래요. 지금 이상해져서.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민선우한테 있을 리가 없었다. 스스로도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며 우울해지는 내가 감당이 되는데 남이 들으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지 예상이 됐다.

나는 숨을 고르며 애써 괜찮은 목소리를 냈다. 이런 복잡한 것보단 내가 말하기에도, 상대방이 듣기에도 가볍게 넘길 있을 만한 이야기가 되게끔 수습하고 싶었다.

“드릴 것이 없다는 말은 그러니까, 그거예요. 그…. 옷이요, . 일자리도 주셨고 옷도 주시고. 자꾸 그러시는데 저는 그만큼 좋은 드릴만한 능력이 없으니까요. 그게 갑자기 부담이 되어서, 그래서요.

눈물을 대충 닦아 내고 하하 웃는 얼굴을 지어냈다. 민선우는 오랫동안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눈물이 멈추고 숨이 안정될 때까지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또다시 손으로 얼굴 전체를 쓸어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참, 엉뚱하고 신기한 사람이에요. 진호 씨는.

녀석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래도 옆으로 안겨 있는 자세였기에 가까웠던 얼굴이 이젠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처음엔 순진해서, 단순한 사람이라 그런 알았는데…. 이렇게 겁이 많고 생각이 많아서 혼자 재고 따지다가 바보 같은 결론을 내는 거라곤 생각도 했지 뭐예요.

“어….

“본인이 거짓말 더럽게 못하는 알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민선우가 잘못 알았다. 거짓말 진짜 잘한다. 특히 괜찮은 척하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세상만사 가볍게 여기는 척도 잘하고, 단순한 척도 잘한다. 민선우 역시 방금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순진하고 단순한 알았다고.

“저 거짓, 훌쩍, 거짓말 잘해요.

오늘 진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주둥이가 뇌랑 따로 놀기로 작정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말로 튀어 나가 버렸다. 민선우가 얼굴을 놓아주었다. 녀석의 눈밖에 보이지 않던 시야에 얼굴 전체가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언뜻 보면 모를 있어도 진호 씨랑 같이 있다 보면 보여요.

“뭐가요…?

“지금 많이 혼란스러울 알아요. 진호 씨는 우리보단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죠.

나는 말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민선우에게 항의하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드라마도 아닌데 다섯 명이 갑자기 다가가는 . 충분히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거절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죠. 그런데도 최대한 우리한테 맞춰 주려고 하는 것도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민선우는 볼을 이마에 대고 양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처음엔 나를 좋아해서 받아 주는 알았어요.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건 우리의 억지에 어울려 주기로 결정한 같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내가 좋아하는 알았다니. 간도 쓸개도 것처럼 굴어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아니면 나도 모르는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감정을 내어 주고 있었나. 생각이 다시 복잡해지려고 했다. 순간 민선우가 자기와 눈을 마주하도록 턱을 잡고 위로 조금 당겼다.

“또. 혼자 생각 많아지려고 한다.

“아, 아닌데요. 조용히 듣고 있던 건데….

뜨끔했다. 사실, 나도 내가 생각이 많은 알아서 일부러라도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깊게 파고들어 봤자 우울해지기만 하는 것을 아니까. 그런데 오늘은 자꾸 그게 된다. 멘탈이 쿠크다스가 되었는지 조금만 걸리는 것이 있어도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다 바스러질 굴었다.

나는 민선우의 눈을 피해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반쯤 감긴 위로 따뜻하고 말랑한 것이 닿았다 떨어졌다.

“조금만 쉽게 생각해 줘요. 진호 씨는 그저 우리의 억지에 어울려 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거예요.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잔잔한 미소를 얼굴이 보였다.

“그게 물건이 되었든, 마음이 되었든. 뻔뻔하다 생각하지 말고 받아요. 우리에게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진호 씨는 많은 것을 주고 있어요.

민선우가 하는 말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녀석이 중에 유독 박히는 말이 있었다. 마음이든 뭐든 받아라. 마음을, 받아라.

“저한테 마음이 있으신 건가요?

질문을 들은 민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럼 우리가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돌아온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바라고,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물을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전에는 바로 옆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던 놈이 갑자기 알짱대는 것이 신기했던 참에, 다른 놈들도 그런 같으니 괜히 욕심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고는 더더욱 말할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침을 삼키고 더듬거리며 최대한 무난한 단어를 찾아 나열했다.

“어…. 그냥, 그냥…. 관심…, 호기심…? 승부… 욕까지는 아닌가….

말을 할수록 일그러지는 민선우의 표정에 나는 결국 끝을 흐렸다.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이런…. 나는 진호 씨가 다섯 명이랑 동시에 만나는 때문에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선택이고 뭐고 준비도 그럴 마음도 없는데, 우리가 자꾸 뭔가를 주니까 그게 부담스러운 알았고요. 한참 잘못 짚었네요, 제가.

민선우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면서 살짝 고개를 젖힌 그대로 눈만 내려서 나를 봤다.

“애초에 단어 선택을 잘못했어요. 관심을 그렇게 받아들일 줄이야. 하하, 그래도 그렇지. 진호 . 나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건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고.

나는 조금 화가 보이는 민선우의 표정에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지도 못한 녀석의 격한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사랑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내가 호기심에 한번 ‘건드려 보자.’라든가, 단순히 다른 놈들한테 지기 싫다는 생각으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진짜 억울해요.

억울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민선우는 눈썹을 늘어트렸다. 정말 서운해 보이는 모습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지경이었다.

“정말 내가, 우리 다섯 명이 진호 씨를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으면 의사가 어떻든지 간에, 구슬리고 협박하고 망가트려서라도 가지든가, 아니면 그냥 손을 뗐겠죠.

“네…? 망가트려요…?

“뭐 하러 이런 귀찮은 짓을 해요. 다른 놈들 거슬리는 참아가면서.

중간에 들린 무서운 말에 내가 몸을 흠칫하며 묻자 잠시 민선우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표정을 보고 작게 웃으며 한숨을 내쉰 녀석은 안심하라는 듯이 등을 쓸어내렸다.

“나는 지금 많은 나비 놀라지 말라고, 도망가지 말라고 최대한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거예요. 나비가 너무 귀엽고, 가엾고, 예뻐서 모습 계속 보려고 얼마나 아껴 주고 있는데. 협약 맺은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급하게 서두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남사스러운 짓을 하려고 했던 민선우에게 그건 급한 아니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정도는 녀석에게 ‘천천히’ 축에 속하나 보다. 반박해 봤자 무시당할 같기도 했고,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쇄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민선우의 기다란 손가락이 남궁후가 남긴 흔적을 누르고 있었다.

“제약을 걸지 않으면 나비의 몸엔 이런 개가 아니었겠지. 나도 결국은 참았을지도 몰라. 그렇게 하게 하려고 규칙을 정하고, 세이프 워드를 정해서 서로를 묶은 거야. 우리 나름대로 나비를 서로에게서 지켜주기 위해서.

나는 협약이라고 하면 인형 팔다리를 각각 잡고 거라고 외치며 당기는 이미지를 그렸는데, 말을 듣고 보니 그건 아닌 같았다. 그것 보다는 서로 갖고는 싶으나 잡아당기면 찢어질 같아서, 모두의 한가운데다 놓고 서로를 경계하는 쪽에 가까운 같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그들은 인형을 많이 아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애지중지하고 있는데 마음을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니. 눈치가 없는 건지, 자신이 없는 건지.

정확히 말하면 다다. 나를 이리 대해 사람이 없었으니 이게 마음을 받는 건지 뭔지 눈치로 수가 없었고, 중간중간 녀석들이 나한테 잘해 준다 싶어도 그게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깐 의심을 했던 적은 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가 그런 애정을 받을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진호야. 네가 도망가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대한 너를 존중하며 다가갈 거야. 마음이 다치지 않게, 천천히. 그러니까 작은 머리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억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받을 자격이 있다.

눈초리에 이겨 답을 하니 녀석이 흐뭇하게 웃으며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들에게 마음을 줄까 걱정하는 거라는 말은 하고, 알겠냐는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곤 민선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고민은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웃음이 났다. 나도 마음을 받고 있었구나. 그게 사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애지중지 대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럴 없다고, 혼자 착각하는 거라고 치부했던 행동들이, 마냥 착각은 아니었구나.

“고마워요.

나는 작게 속삭이며 생각했다. 역시 마음을 주는 것은 되겠다고. 지금은 그저 조금의 틈이 생겼을 뿐인데도 애정 어린 마디 들었다고 울던 내가 웃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이런데, 마음을 버린다면 나는 그들에게 속절없이 끌려 다닐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애정이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감정이 진지하다고 생각하기엔 아직도 걸리는 점이 너무 많았다.

당장 주어지는 달콤함에 취해 홀랑 넘어가 버린다면 필시 언젠가는 괴로워질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정함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지킬 것이다. 적이 있으니 이번엔 해낼 있을 것이다.

              

63

지잉-.

울리는 핸드폰을 켜니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정새빈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정새빈을 만나는 날이었다. 얼마 전에 하고 싶은 있냐고 묻는 녀석에게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양치를 하던 나는 칫솔을 손의 물기를 닦고 화면을 넘겼다.

[골라]

텍스트도 같이 쓰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한 메시지를 보고 피식 웃으며 밑으로 내리니 여러 개의 링크가 있었다. 차례대로 유명 화가의 내한 전시회, 피아노 독주회, 모빌리티 등의 사이트들이었다.

여기를 가자는 얘기겠지? 나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옮기고 다시 양치질을 시작했다. 저번에 음악회 가서 퍼질러 자고 다시금 깨달은 건데, 나는 이런 문화생활과는 맞지 않았다.

역시나, 링크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펴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전시회는 가서 5 있을 같고, 피아노 독주회는 분명 잠들 같고. 심지어 모빌리티 쇼는 차로 가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한다.

나는 일단 다른 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안도 없이 마음에 든다 그러면 괜히 까탈스러운 데이트 상대처럼 구는 같아서였다. 근데 딱히 하고 싶은 없었다.

, 이거 완전, 그거잖아.

 

‘뭐 할래?

‘아무거나.

‘그럼 이거 할래?

‘아, 그건 싫어.

‘그럼 뭐하고 싶은데?

‘아무거나.

 

인터넷에서 밈으로 봤을 저러냐 싶었는데, 지금은 화자에게 너무 공감이 간다. 정말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는데 정새빈이 보낸 선택지들은 모두 싫고, 그렇다고 다른 생각해 보면 딱히 하고 싶은 없어서 아무거나 하고 싶은 느낌적인 느낌.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헹군 물을 뱉으면서 웃어버렸다.

지잉-.

입을 닦으면서 요즘 많이 보는 영화라도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것도 없이 정새빈이었다. 내가 답을 하지 않는 이유를 눈치챈 건지 [ㅋㅋㅋ] 하는 웃음과 함께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혼자 머쓱해서 뒷머리를 긁었다.

이번엔 보냈나 확인해 보는데, 익숙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거다, 하는 마음에 정새빈에게 바로 답장을 했다. 내일의 일정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 거의 도착했어.

“저도 준비 했어요! 지금 나가면 돼요?

우리 집은 골목에 있어서 세울 데가 마땅치 않았다. 거의 왔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져 신발을 구겨 신고 얼른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잠그고 골목으로 나가니 이제 들어서고 있는 대가 보였다. 운전석에 정새빈이 앉아 있었다.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미지로는 기사가 운전하는 뒷좌석에 앉아서 늘어져 있는 망나니 도련님 포지션이 어울리는데, 운전이라니. 좁은 골목에 들어오느라 좌우 백미러를 살피는 모습이 뭔가 웃겼다.

이게 뭐라고 웃음이 나오지? 운전 진짜, 너무 어울리네. 나는 혼자 큭큭대면서 앞에서 멈춘 차에 탔다. 녀석은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고개만 끄덕이더니 턱으로 안전벨트를 가리켰다.

직접 안전벨트를 줬던 민선우와 달리 정새빈은 내가 때까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출발했다.

“형, 이거 찾아보니까 바로 매진될 만큼 인기 많던데 어떻게 구했어요?

“책상에 있었어.

저게 소리야. 나는 어이없는 대답에 바로 정새빈을 쳐다봤지만 놈은 똑같은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것을 보니 진담이었나 보다.

“쫑쫑인 처음?

“네, 처음이에요. , 근데 어렸을 영화로는 봤어요.

“알아.

뭐를. 네가 아는데. 라고 얘기할 뻔했지만 삼켰다. 녀석이랑 대화하다 보면 자꾸 태클을 걸게 되는 같다. 말을 길게 하지도 않는데 묘하게 사람 받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형이 알긴 아는데요?

내용까지 부드럽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때까지 앞만 보던 정새빈이 질문을 듣자마자 쪽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테이프 봤어. 쫑쫑이네 책장.

“아…. 그건 언제 봤대요.

아무래도 방에 왔을 책장에 꽂혀 있던 테이프를 봤나 보다. 그래서 내가 영화로 것은 안다는 건가. 설마, 그거 보고 일부러 이거 보자고 그런 아니겠지? 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정새빈의 얼굴을 정면으로 살폈다. 평소엔 흐리멍덩한 눈이 운전을 하느라 그런지 또렷했다.

“원래 이런 보러 다녀요?

“응.

“저한테 보내준 링크들에 있었던 전시회랑, 그런 것들도요?

“…응.

“형은 이미지랑 다르게 되게 문화생활을 즐기네요?

“뭐….

때릴까. 나는 모든 질문에 글자로만 대답하는 녀석에게 먹여야 하나 그냥 말을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부들거렸다.

마지막은 받아서 비꼰 건데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 보고, 새끼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 많을 누구보다 많은 놈인 알아서 그런지 이쯤 되니까 어떻게든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다.

“형, 제일 좋아하는 뭐예요?

대학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배웠다. 답을 원한다면 열린 질문을 던져라. 나는 그때 교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매우 열린 질문을 던졌다. 이제 적어도 글자보다는 대답이 오겠지.

“섹스.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확실히 글자보다는 대답이긴 했다. 내용이 얼토당토않아서 그렇지 확실히 질문에 대한 답도 되었고, 아까보단 길었다. 나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취미는 뭐예요?

“섹스.

내가 기대한 답은 미술품 관람이라거나 음악 듣기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있지. 그게 취미가 있나 싶지만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 취미 삼을 수도 있지. 나는 이번엔 입을 앙다문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음…. 형이 제일 잘하는 뭐예요?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운 정새빈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나를 향해 웃는 정새빈을 보며 직감했다.

“섹스.

그래, 씨발. 그렇게 대답할 알았다, 새끼야. 이제 대답이고 뭐고 질문할 의욕을 잃었다. 나는 그냥 창밖이나 쳐다보기로 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리고 싶어졌다.

“진짜야. 섹스 좋아하고 잘해. 저번에도 말했잖아.

드디어 녀석의 입에서 문장이 나왔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나는 조그맣게 녀석이 말을 따라 하며 흉내 냈다. 정새빈은 ‘줘붠에도 말훼짜나-’라고 하면서 일부러 얄미운 표정을 짓는 나를 힐끔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내렸다. 진짜 사람 김빠지게 하는 있는 녀석이다.

나는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이라 없었지만 저놈을 보고 있는 것보단 나을 같았다. 후진 기어 소리가 나기 전까지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주차를 마친 녀석이 시동을 껐다. 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녀석 덕분에 편하게 왔으니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녀석은 뭐가 급한지 이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뒷모습을 보고 뭐야, 우리 늦기라도 건가, 싶어 덩달아 급하게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내리기 위해 문을 열려는데, 어느새 조수석 쪽으로 정새빈이 문을 열어줬다. 하는 건가 싶어서 황망하게 올려다보니 정새빈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그다음 잘하는 , 듣는 . 특기 관찰, 취미 대나무 .

“네…?

“오늘 . 쫑쫑이가 낡은 테이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라이온킹, 뮤지컬로 보여 주기.

잡으라는 듯이 앞에 내밀어진 손에, 고개를 들자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과 나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홀린 듯이 녀석의 위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조금 멋있었다.

“어….

단추를 채우지 않아 살짝 벌어져 있는 셔츠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선과 쇄골이 퇴폐적이면서도 섹시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녀석은 내릴 생각은 하고 멍하니 자기를 올려다보는 손을 쥐었다 폈다.

“가자.

“네. , 가요.

나는 허둥지둥 내리면서도 계속 정새빈의 얼굴을 힐끔댔다. 어느새 다시 멍한 얼굴로 돌아온 녀석은 문을 닫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가는 방향을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이었다. 성의 없긴 했지만 아까 이런 자주 온다던 대답은 진짜였나 보다.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지가 백마 왕자님이야 뭐야. 손은 내밀고 지랄이야.

정신 차려, 김진호. 겉은 저래도 속은 완전 또라이인 놈이라는 기억해. 나는 놈의 뒤를 따라가며 양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좌석도 되게 좋은 데네.

티켓을 받고 좌석 배치도를 확인해 보니 저번 음악회 때처럼 중간 섹션의 중간 자리였다. 커다란 회장에 중간 좌석, 그리고 옆자리의 정새빈까지 겹쳐서 그런지 자연스레 그때 기억이 났다. 설마 이번에도 잠들진 않겠지?

조금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뮤지컬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도 하니까 그렇게 쉽게 잠들지는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니까.

나는 작게 주먹을 쥐면서 이번엔 끝까지 깨어 있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어느새 없어진 정새빈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언제 저만치 갔는지 꽤나 멀리 떨어진 녀석은 가만히 서서 어딘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형, 그렇게 봐요?

“저거.

              

64

그래, 내가 너한테 친절한 답을 기대하고 물어봤겠냐. 나는 턱을 들어 앞을 가리키는 녀석을 짜게 식은 눈으로 다음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판에는 얼굴 사진들과 함께 배역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오늘 연기하는 배우들인 모양이었다. 나는 봐도 누가 누군지 몰라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괜찮겠네.

정새빈을 따라 중요한 거라도 있나 싶어 판을 샅샅이 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녀석을 바라봤다.

“뭐가요?

“오늘. 다르거든,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정새빈은 손가락으로 사진 하나를 집더니 자기 취향이라는 소리도 덧붙였다.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까지 끄덕거린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는 있었다.

이럴 거면 제일 좋아하는 물어볼 해괴망측한 말고 뮤지컬이라고 대답할 것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장 시간을 알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관 안으로 걸어갔다. 정새빈은 팸플릿을 읽느라 움직일 생각을 해서 내가 그냥 팔을 잡고 끌고 갔다.

“쫑쫑아, 라이온킹이야?

자리에 앉아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정새빈이 물었다. 이제야 팸플릿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젠 녀석의 두루뭉술한 말에 되묻기도 지친다.

대충 라이온킹이 좋냐는 거겠지 . 아니면 어쩔 거야. 몰라, 쟤도 맘대로 말하니까 나도 그냥 맘대로 말할 거야. 나는 무대를 마저 둘러보며 대답했다.

“재밌잖아요. 신나고.

말이 끝나자마자 회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대답을 들은 건가 확인하기 위해 정새빈을 봤다. 어두워서 다른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녀석의 눈동자는 또렷하게 보였다. 눈싸움하듯 서로의 눈만 보고 있다가,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에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조용한 회장을 가르는 음악. 힘을 더하는 악기 소리와 코러스, 동물 분장을 배우들. 조금은 오글거릴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심장을 뛰게 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배우들을 봤을 엉덩이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 이거 좋아하네.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있었다. 어지러이 움직이던 배우들이 자리에 멈춰서고, 주인공인 아기 사자가 들어 올려졌다. 수십 번은 봤던 라이온킹. 이제는 집에 테이프 기계도 없고, 봤다간 망가질 같아서 보관만 하고 있지만, 한때는 내가 우울할 때마다 보던 영화였다.

처음엔 노래가 신나서였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노래와 귀여운 동물들이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고 신나서 좋아했다. 그다음엔 주인공 사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봤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스스로 미움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주인공은 사실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멀리 떠나버린 그를 찾아왔던 히로인과 위험해지는 것을 무릅쓰고 주인공을 돕기 위해 길을 떠나온 친구들이 좋았다. 그를 지키느라 죽어야 했던 아버지 사자도, 돌아온 그를 누구보다 환영해 주는 엄마 사자도 좋았다.

영화를 보면서 항상 혼자 생각했었다. 나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나의 부모님도, 친구들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도 사실은 나를 사랑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주인공이 움직이는 시간 동안 나는 분명 그럴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우울했던 감정을 달래곤 했다.

“와 , 진짜 너무 재밌는데요? 장난 아니다. , 영상이랑 진짜 다르네요!

1부가 끝나고 회장이 밝아졌다. 나는 멍하니 무대만 보고 있다가 솟구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녀석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정새빈은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그런 신경 겨를이 없었던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얘기했다.

“아니, 뮤지컬 좋아하네! 와씨, 빨리 2 시작했으면 좋겠어… 요….

젠장. 어쩐지 너무 차지게 잡힌다 했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한껏 구깃구깃해진 정새빈의 옷깃. 그냥 닿는 데를 잡은 건데, 그게 녀석의 멱살이었다. 나에게 멱살을 잡혀 이리저리 흔들렸을 정새빈은 아무 없이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하, 하하하. 아니 제가 너무 흥분해서 멱살을 그만…. 죄송해요. 팔인 알았어요, .

괜히 민망해진 나는 한껏 구겨진 셔츠의 앞섶을 탁탁 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뒷자리 사람들이 향해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씨, 쪽팔려.

“…억!

뒷목을 긁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위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덕분에 그냥 사람들 눈을 피해 살짝만 숙이려던 고개는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고꾸라질 내려갔다. 보이진 않지만 이런 짓을 범인은 사람. 옆에 앉아 있던 또라이밖에 없었다. 나는 위로 엎어진 놈에게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 하는 , 일까요?

“심장.

말을 알아듣게 하라고, 미친놈아.

힘을 줘서 누르는 건지 아니면 온몸에 힘을 빼고 엎어진 건지는 몰라도 진짜 더럽게 무겁다. 손은 무릎에 두고, 손은 목을 긁다가 녀석의 몸에 눌리는 바람에 오로지 복근의 힘으로만 무게를 지탱해야 했다. 숨이 턱턱 막혀 온다. 나는 끝까지 차오른 씨발 소리를 삼키며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했다.

“심장이고, 나발이고, 힘들어 뒤질 , 같으니까, 일단 , 나오는 , 어떨까요?

물론 내용까지 친절하게 바꾸는 것은 실패했다.

“으으응, 조금만 .

저것은 앙탈인 건가. 날개 뼈가 있는 부근에 녀석의 얼굴이 부비작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나를 보며 수군댔던 뒷사람들은 지금쯤 경악을 하고 있겠지? 멀쩡한 사내놈 위에 얹힌 사내놈이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라니.

쪽팔려 죽을 같은 마음에 어떻게 해서든 떨쳐내고 싶었지만, 평소 운동을 멀리하던 복근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좌석에 머리를 박거나 머리를 지키기 위해 몸을 틀어서 바닥에 나뒹굴게 되거나 하나일 같았다.

최악인 것은 내가 앞으로 넘어지면 위에 있는 놈한테 완전히 깔린 꼴이 거란 점이다. 그럼 나는 2부고 뭐고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위에 있는 또라이랑은 다르게 나는 수치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간을 버텼을까.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이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은 버틸 같아서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윽…. 제발 , 켜….

“어. 2.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게감이 사라졌다. 회장의 불이 꺼짐과 동시에 정새빈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순식간에 가벼워진 몸을 일으키자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보고 있는 정새빈이 보였다. 진짜 때릴까, 새끼. 꿀밤이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에 주먹을 꾸욱 쥐었다. 누군 쉬는 시간 내내 막히고 힘들어서 낑낑댔는데, 웃어?

힘들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는데 그새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러고 있었다는 내가 앉은 좌석이 보이는 모든 사람이 우리가 겹쳐 있는 봤다는 얘기잖아. 생각을 하니 쪽팔려 죽겠는데, 정작 본인은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군다고?

나는 주먹을 부들거리며 녀석을 째려봤다. 이미 죽은 듯이 조용해진 회장에서 난리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진짜 그냥 째려만 봤다. 그러나 녀석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대만 주시했다.

“하….

그래, 내가 참아야지.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때마침 극이 시작했다. 힘찬 노랫소리를 들으며, 받았던 것은 차츰 잊어버리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던 아기 사자는 유쾌한 친구들을 만나 즐거움을 아는 청년 사자가 된다. 아름다워진 어릴 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자기 자신에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덜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어머니를 핍박하고 있는 삼촌, 악당을 보고 눈이 돌아간다.

나는 액션을 시작하려는 배우들을 보며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런 귀에 언젠가의 채예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진호야, 자꾸 감아. 제일 재밌는 장면인데!

 

채예령은 영화 때도 참견이 심했다. 보다가 눈도 감고 그럴 수도 있지 그걸 굳이 소리로 외쳐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시끄러. 보기 싫은 어쩌라고.

 

나는 어이없어하는 녀석을 한번 흘겨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서로를 때리고 상처 입히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악당을 물리치는 통쾌한 장면일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었다. 나에게 영화에서 물리치고 싶은 캐릭터는 없었다.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소중했다. 하나같이 나의 꿈을 담고, 나를 대변하는 친구들이었다. 주인공은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이상이었고, 주인공의 친구는 채예령 곁에 있는 나와 같았다. 위엄 있으면서도 다정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는 내가 항상 꿈꾸던 모습 자체였고,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은 나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악당은, 그는 나의 못된 생각들을 모아 놓은 존재였다. 열등감에서 나오는 치기 어린 공격성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그는 미움받기 싫어 꽁꽁 숨겨놓은 안의 못된 마음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들에 공감했고, 그만큼 안타까워했다.

 

‘그냥 사이좋게 지내면 좋았을 텐데. 서로 그냥 조금만 쉽게, 좋게 생각했으면…….

‘어휴, 진호야. 주인공이랑 주인공 아버지는 그러려고 했는데 악당이 그걸 엎은 거잖아. 마지막에도 그냥 떠나게 해줬더니 오히려 덤비다가 자업자득으로 죽은 건데 울고 그래.

 

나도 안다. 악당은 못된 짓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냥 후회할 정도로만 혼나고 죽지는 않길 바랐다. 자기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한 뒤에 다른 애들과 둥글게 살아갔으면 했다.

어린이 만화 영화니까 어쩌면 그렇게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결국 악당은 마지막까지 잘못된 선택을 했고, 죽어버렸다. 앞으로 펼쳐질 밝고 행복한 세상에 그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매번 장면을 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장면에서만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밝고 행복한 장면에서 눈을 떴다. 그럼 울지 않고 끝까지 행복하게 영화를 있었다.

              

65

짝짝짝-

웃고 울다 보니 어느새 뮤지컬이 끝나있었다. 무대가 한차례 비워지더니 배우들이 나와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박수 치는 얼떨떨하게 따라 치고 있는데 여기저기 일어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어나고 싶어?

점점 일어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져서 나도 같이 일어나야 하나 싶은 마음에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는데, 정새빈이 그걸 봤나 보다. 상체를 기울여 턱을 괴더니 웬일로 제대로 질문을 던졌다.

“일… 어나야 하는 아니에요?

말하면서도 무식한 질문인 같아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래도 용케 들었는지 녀석은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좋았으면. 좋았어?

“네! 진짜 엄청요!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 만화 영화보다 훨씬 현장감이 넘쳤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으며 현실을 잊게 해줬다.

어제만 해도 보다 보면 어렸을 때가 생각나 우울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아까 밖에서 잠들까 걱정했던 것도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를 빤히 보던 정새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녀석을 따라 시선을 올리는 나를 내려보며 웃더니 양팔을 잡았다.

“끙-.

“어…?

정새빈은 마치 무를 뽑듯이 나를 들어 올렸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아무 소리도 내고 일으켜 세운 대로 일어선 나는 멍하니 녀석을 쳐다봤다. 정새빈이 턱을 잡아 무대 쪽으로 돌렸다.

“반짝거리지?

무대에선 배우들이 일렬로 서서 인사하고 들어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새빈이 속삭인 말처럼 그들은 밝은 조명 밑에서 반짝거렸다.

배우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의 이상과 , 기대와 정체성 그리고 못난 마음이 모두 행복해하고 있었다.

커다랗게 울리는 노래와 브라보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나는 어느새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박수를 쳤다. 모든 것들이 끝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나는 가시지 않는 흥분과 왜인지 혼자가 같은 허전함에 쉽사리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무대와 웃으며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을까, 회장은 직원 분과 , 정새빈만 남았다.

“그렇게 좋으면 보러 올까, 진호야?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참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며 고개를 저었다.

“왜?

“이거 엄청 비싸잖아요. 구하기도 힘들다고 그랬….

거절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계속 무대만 보고 있는데, 정새빈이 턱을 잡더니 자기 맘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말로 하지…! …왜 자꾸 사람 턱을 잡고….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시야에 가득 정새빈은 웃고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느라 내려 , 한쪽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 얇고 붉은 입술,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 녀석은 턱을 잡은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쓸며 나직하게 말했다.

“반짝이는 좋아서 그래.

구미호한테 유혹당하는 선비가 이런 마음일까? 나는 자꾸 벌어지는 입을 다물고 손으로 이마를 때렸다. 정신 차려. 홀리지 . 이렇게 미남계에 약한 애였어?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또라이 정새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공연 보는 좋긴 한데, 괜찮아요. 오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제법 단호하게 뱉어진 대답에 나는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순간 가슴에 얹어진 위로 정새빈의 손가락이 닿았다. 그리고 가슴께를 보는 건지 눈을 내리깐 채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니야. 네가, 쫑쫑이가 보고 싶은 거야.

정새빈은 아까와는 다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홍조가 띄워져 있어서 그런지 어딘가 쑥스러워하는 같기도 하고, 녀석에게선 결코 없을 같던 풋풋한 느낌이 나는 같기도 했다.

“저요…?

“응. 지금처럼. 반짝반짝.

뭐야, 녀석 갑자기 이래. 내가 반짝거린다는 말인 같긴 한데…… 수줍어 보이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쑥스러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하얗고 섬세해 보이는 손이 보였다. 완전히 겹친 서로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어, , 이제 그만 집에 갈까요?

묘해지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마음에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말하며 손을 뺐다. 허공에 그대로 있는 녀석의 손을 내려주고 출구를 가리키며 뒤를 돌았다.

“사람들도 나갔네요. 저희도 얼른 가…!

그러나 호기롭게 출발한 치고 발자국 가지 못하고 자리에서 멈춰 섰다. 뒤따라오던 정새빈이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은 탓이었다.

“왜 이래요, . 가자니까요…?

이쪽을 힐끔대는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녀석의 팔을 잡고 내리는데 풀리긴커녕 옥죄어 왔다. 뒷목에 닿은 녀석의 이마는 뜨거웠고, 머리카락은 예민한 피부를 간지럽혔다.

“하… 진짜 …어.

이대로 있다간 이상한 소리라도 같은 불안함에 머리를 숙여서 녀석의 머리카락을 피하려는데 정새빈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었는지 간질거리는 것은 멈췄지만 이번엔 녀석의 숨이 닿아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참을 것만 같아 나는 뒷목을 손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녀석에게 되물었다.

“뭐라고요?

그러자 정새빈은 몸을 완전히 밀착시켜오며 귀에 속삭였다.

“쫑쫑이하고 섹스하고 싶어, 지금 당장.

동시에 위로도 느껴지는 묵직한 무언가가 엉덩이에 닿았다. 귀에 닿는 숨과 어느새 사이로 들어와 허리를 쓰다듬는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나는 녀석을 저지시키기 위해 다급하게 팔을 잡아 내렸으나 진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힘으로 벗어나는 것은 포기하고 말로 설득하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씨발.

“읏, 잠…!

이쪽을 보고 있는 직원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나는 경악하는 직원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아래로 깔았다. 신음이 나오려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한쪽 발을 높게 치켜들었다가 녀석의 발등을 향해 힘껏 뻗었다.

“윽…!

순간 허리에 감긴 팔이 느슨해진 틈을 얼른 팔을 쳐내고 뒤로 돌아 녀석과 마주 봤다. 정새빈의 얼굴은 한껏 찡그려져 있었다. 나는 아까 직원이 있었던 자리를 한번 힐긋대고 허공을 헤매고 있는 녀석의 손을 잡고 끌었다.

“공공장소에서 개소리하지 말고 얼른 따라오기나 해요. 집에 가게.

다행히 녀석은 이번엔 돌발행동 없이 따라 나왔다.

 

 

“일단 저기 소파에 앉아 봐요.

계속 절뚝거리며 걷는 정새빈이 걱정되어 집에 오자마자 소파를 가리켰다. 누굴 때리고 그러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쟤하고 엮이면 나도 모르게 힘을 쓰게 되는 같다. 나는 녀석이 앉는 것을 확인하고 최태혁이 돌아간 후엔 일이 없었던 구급상자를 찾아 선반을 열었다. 그때 그놈 치료한다고 이것저것 사놨던 터라 구급상자는 아직도 제법 묵직했다.

상자를 한쪽 팔에 들고 뚜껑을 여는데 멀뚱히 나만 보고 있는 정새빈이 시야에 걸렸다.

“양말 벗어주세요, .

별생각 없이 상처 부위를 보기 위해 뱉은 말인데 그게 웃겼는지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쫑쫑이 변태.

헛소리하네, 저게 진짜. 나는 구급상자를 뒤적이며 정새빈에게 걸어가다 말고 멈춰 섰다.

“잘못 들으셨나 본데요, . 저는 다른 말고 .. 양말을 벗으라고 했거든요?

“그니까 변태.

녀석은 가슴 앞으로 팔을 교차시키더니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걸 한번 던져볼까. 아니, 아니다. 나는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마터면 던질뻔한 구급상자를 쥐고 녀석의 앞쪽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상한 소리 하느라 아직도 양말을 신고 있는 녀석의 발을 무릎에 올렸다.

“아파….

피부가 벗겨졌을까 천을 들어 올리며 최대한 살살 벗기는데 녀석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힐끔 보니 허리 숙여 발을 보는 얼굴이 울상이었다.

조심스레 양말을 벗기자 드러난 발은 피까지 비칠 정도로 피부가 까져 있었고 발등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내가 너무 세게 밟긴 했지. 나는 밀려오는 미안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발을 요리조리 살폈다. 여기서 이럴 아니라 병원…을 가야 하나?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영업 중인 병원이 없을 만한 시간이었다. 그럼 일단….

“필요 없어.

“…?

잠시 망설이다 가까운 응급실이라도 찾으려고 지도를 검색하는데 정새빈의 손이 휴대폰 액정을 덮었다. 녀석의 시야가 나보다 위에 있긴 하지만, 검색하는 내용까지는 보는 각도였기 때문에 얘가 갑자기 이러나 싶었다.

“아니, 제가 알고….

“병원.

 나는 녀석의 대답에 머리를 뒤로 물리며 경계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무슨 표정만으로 아는 건가.

“하하, 멍청한 표정.

녀석은 당황한 표정이 웃겼는지 코앞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 내서 웃었다. 자기가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누구보고 멍청하대.

“사람 자꾸 멍청해 보인다고 그러는 아니에요. 그리고 ? 나름 똑똑해요! 나름.

“응응~

“으휴, 정말. 진짜 응급실 가봐도 되겠어요? 그때 너무 당황해가지고 정말 힘을 다해서 밟아서 많이 아플 텐데….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구급상자를 끌어왔다. 나도 죽을 같을 빼곤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마음을 같아서였다.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이럴 냉찜질인지 온찜질인지 이따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연고와 면봉을 꺼내 들었다.

정새빈은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내가 하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상처를 볼수록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호호 불면서 정성껏 약을 바르던 나는 녀석을 힐긋 보며 말을 건넸다.

“혹시 병원 가는 싫어해요? 저도 진짜 웬만한 아니면 가요. 가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런가 병원 간다고 생각하면 괜히 아픈 같고 그렇더라구요.

마지막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는 같아서 민망한 마음에 일부러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밴드를 뜯으면서 고개를 젖혀 정새빈과 눈을 마주치려는데, 녀석은 내가 아니라 자기 발을 보고 있었다.

“싫은 아니야. 아는 거지.

시선을 따라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보고 다시 정새빈을 보면서 이젠 익숙해진 패턴대로 녀석에게 되물었다.

“뭘 아는데요?

“이 정도 다친 놔두면 알아서 낫는다는 .

              

66

그렇게 말하며 정새빈은 옆으로 털썩 누워 버렸다. 하체는 그대로 두고 상체만 천장을 보게끔 누운 녀석은 전등 빛을 향해 손을 뻗더니, 손가락을 벌렸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아.

뭔가 사연이 있을 같이 한숨을 쉬고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상황이 닥친 같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물어서 정새빈이 속을 털어놓을 있게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전에 남궁호 때처럼 뭐라도 선택해서 의사를 표현해 달라고 하기엔, 지금 여기에 있는 구급상자와 신었던 양말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말하고 싶으면 물파스, 다른 얘기를 하고 싶으면 빨간약을 들어 주세요, 라고 하는 아닌 같았다. 거기다 그때 남궁호가 지었던 어이없다는 표정을 생각해 보면 그냥 방법 자체가 그렇게 좋은 같지도 않았다.

에이씨, 차라리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넘기는 건데 순간적으로 어색하게 반응해 버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해 봐도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하던 것이라도 끝내기 위해 밴드에서 종이를 뗐다. 까진 피부에 접착 부분이 닿아서 쓰라리지 않도록 조준해서 붙이고 나니 그나마 아파 보였다.

, 이제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하나.

“아, 멍청한 표정.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는데, 바로 앞에 놓인 녀석의 손가락이 보였다. 어느새 정새빈은 내가 있는 방향으로 상체를 틀어 나를 보고 있었다. 바닥에 앉은 나와 시선의 위치가 비슷해서 그런지 녀석의 표정이 보였다. 반대로 녀석에게도 애매한 표정이 보이리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정새빈이 피식 웃었다.

“정말 말주변이 없네, 쫑쫑이는. 그런데 눈치는 있고. 오지랖 부리고 싶지 않아 하면서 어중간하게 착한 심성 때문에 무시도 하고.

전에 뒷담화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사람이 돌려 말하거나 포장해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반박하기엔 뭐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분 찝찝하게 만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나는 약간 울컥하는 기분에 입을 삐죽거리고 싶은 것을 참으며 녀석의 발을 바닥에 살살 옮겨 놓았다.

“…다른 몰라도 지금 앞담화 당하고 있는 알겠네요.

정새빈은 웃는 표정 그대로, 미간을 한껏 찌푸린 나와 마주 보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나는 아직도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다른 화제를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고 분위기만 읽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어영부영 넘어갈 같기도 하고? 눈을 도로록 굴리면서 마른 입술을 축이는데, 녀석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쉬워. 사랑의 매를 사랑한 완벽주의자 아버지, 장남.

정새빈은 ‘장남’이라고 말하며 자기를 가리켰다. 하체까지 펴서 이제 완전히 소파 위에 옆으로 누운 녀석은 팔을 접어 턱을 괴었다. 매우 편안해 보이는 자세를 취한 정새빈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엔 뭐라고 말할래? 하는 듯한 표정에 나는 한숨을 삼켰다.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사랑의 매여도 체벌을 당하는 좋은 기억은 아니죠. 하고 말하면 너무 주제넘는 같고, ‘아 그렇구나.’하면 너무 무관심한 같고, ‘아버지가 완벽주의자셨나 보네요.’나 ‘장남은 힘들죠. 하는 없어서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것처럼 들릴 같았다.

답답함에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데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정새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손만 쥐었다 폈다. 그러다 침묵이 너무 길어지는 것도 실례인 같아서 일단 소리라도 내려고 입을 열었다.

“어… 그…….

그러나 정새빈은 내가 무슨 말을 기회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궁금해?

“…예?

, 이건 무슨 시련이야. 자기 이야기가 궁금하냐는 말이겠지?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하긴 했다.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배경을 듣고 나니 그랬다.

문제는 여기서 궁금하다고 고개를 끄덕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여기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맥락의 고민이었다.

“그… 궁금…하다는 표현보다는 뭐랄까, , 아니 궁금하지 않은 아닌데 그게 그러니까…….

하…. 나는 그냥 병원 가기 싫어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을 뿐인데 도대체 이렇게까지 흘러온 거야…. 곤란한 마음에 어색한 웃음을 달고 관자놀이를 긁었다. 그러자 그걸 녀석은 접었던 팔을 펴고 소파에 철퍼덕 얼굴을 묻듯이 엎어졌다. 내가 답답해서 그러는 같았다.

그래, 내가 정새빈 입장이었어도 엄청 답답했을 같다. 한마디 하는 이렇게 고민하다 결국 사람 복장 터지게 만드는 애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나는 또다시 나의 한심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동시에 정새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말하라는 질책이 들려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녀석은 뜬금없이 동화 구연을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가부장적인 완벽주의자 왕이 다스리는 집에 왕자가 태어났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감았던 눈을 녀석을 봤다. 정새빈은 잔잔한 미소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전히 반쪽 얼굴을 소파에 묻은 채였다.

“왕은 왕자가 정말 완벽한 아이일 거라고 기대했지요. 자기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자는 생각보다 평범한 아이였지 뭐예요?

말투만 들으면 정말 유치원 선생님이 책을 읽어 주는 같아서 웃길 법도 한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정작 말하는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내용의 흐름은 전혀 재밌지가 않았다.

“조용해서 불만, 약해서 불만, 남들보다 우수하지 못해서 불만, 불만, 불만, 불만. 왕은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어요.

녀석은 ‘불만’을 여러 말하면서 손가락을 마치 지휘하듯 움직이다가 우뚝 멈췄다. 그리고 주목하라는 눈앞에서 손가락을 돌리더니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래도 왕자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던 왕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 보았지만, 이런, 이런. 왕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똥고집쟁이였어요.

나는 당연히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허리까지 내려간 녀석의 손은 옷을 들어 올렸다.

“…형, 이게 무슨…!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고민이고 뭐고 나도 모르게 반응이 먼저 나갔다.

“그래서 왕은 왕자가 말을 처들을 때까지 잡듯이 보기로 했답니다.

녀석의 하얀 피부에는 거무죽죽한 얼룩과 우둘투둘한 흉터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 * * 

새빈은 얌전한 핸드폰을 보며 웃었다. 역시 그가 보낸 것들이 진호의 취향이 아닌 모양인지 읽었다는 표시 뒤에도 분간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의 예상에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반응을 보며 새빈은 미리 복사해 놓은 링크를 하나 보냈다. 읽었다는 표시와 함께 이번에는 바로 답장이 왔다.

[라이온킹을 뮤지컬로도 해요? 이거 있음 이거 가요, 우리!]

이번에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처음부터 진호가 라이온킹 뮤지컬을 고를 거라고 확신했음에도, 그가 좋아하지 않을 같던 전시회나 음악회 등의 링크를 먼저 보내 이유는 단순히 진호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단번에 싫다고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진호 자체가 사람에게 싫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거나, 새빈도 ‘잘 보여야 하는 사람’ 리스트에 발을 걸쳐 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전자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다섯을 한꺼번에 묶어 놓은 ‘협약’이 진호의 심경 변화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길 바라며 새빈은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봤다.

환한 전등 빛이 바로 눈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는 대신 팔을 뻗어 손으로 전등 빛을 가리고 손가락을 벌렸다 오므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가 생각에 잠길 때마다 하는 의미 없는 습관이었다.

방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택시를 타고 가려던 새빈은 복도를 걸으면서 고민했다.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나으려나. 평소에 하지 않을 뿐이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데이트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일지 새빈도 알고는 있었다. 운전하는 것을 귀찮아하긴 해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키의 행방을 알기 위해 가족 누군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던 새빈 앞에 때마침 사람이 지나갔다. 얼굴이 눈에 익은 것으로 보아 일한 오래된 사람 같았다. 새빈은 아직 걸음 떨어지지 않은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키.

“…지하 주차장에 보시면 걸려 있을 겁니다.

사람은 갑작스럽고 불친절한 물음에도 놀라지 않고 돌아서서 원하던 대답을 내놓았다.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인 듯했다. 운이 좋았다. 새빈은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진호가 그를 재밌게 주길 바라며 느릿느릿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67

“운전도 하시네요? …아. 말투 이렇게 나왔지? , 시비 거는 아니라 그냥 의외라서 말한 거예요! 말투가 이상하게 나오긴 했는데 아무튼 무시하거나 그런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예요! 진짜!

운전을 하는 그가 웃겼는지 키득대면서 차를 진호는 제법 그에 대한 경계심이 풀려 있었다. 아직 다른 애들한테 하는 것처럼 굴지는 않는 같지만, 그래도 무작정 배척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말투가 의도와 다르게 나갔는지 말해 놓고 자기가 놀라서 수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빈은 정도면 나름 풀려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협약 처음 만난 얼마나 그를 경계하던지.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고 거실 바닥에 누워만 있었는데도 전방 1m 이내로 오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면 질문하기 위해서라지만 굳이 허리까지 숙여 눈을 맞추려는 진호의 태도는 나름대로 엄청난 변화였다.

되도록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던 새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태도는 잠깐의 대화 이후 다시 퇴보 위기에 놓여 있었다.

“아… 진심 내리고 싶다….

새빈은 진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핸들 위에 걸친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에게 전보단 관심이 생겼는지 이것저것 물어봐 오는 것이 나름 귀여워서 딴은 솔직히 대답해 줬건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취미냐고.

새빈은 주차장을 들어설 때까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투덜대는 진호를 힐긋댔다. 정말 섹스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자 취미이고, 잘하는 맞는 새빈은 조금 억울했지만 부연 설명을 생각은 없었다.

나름의 서사라고 만한 있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이야기까지 꺼내며 진호를 이해시킬 만한 열정이 없었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았다.

그래도 새빈은 진호가 그를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보던 것에서 겨우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다시 ‘역시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진호의 상식선에서 수용할 있을 만한 답을 주기로 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새빈은 주차를 끝내고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려 진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기도 허둥지둥 내리려고 하는 진호를 보며 조수석 앞에 서서 마치 신사인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진호가 약해지는 포인트를 공략할 만한 멘트도 덧붙이며 새빈은 사람들을 손쉽게 홀렸던 미소를 지었다.

“…설마 했는데….

진호는 멍한 얼굴을 하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오늘의 일정 자체가 그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같았다.

새빈은 그날 진호와 대화하면서 방을 관찰했었다. 사실 말하면서 별생각 없이 둘러본 것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둘러보던 그의 눈에 박히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새빈도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 만화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였다.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책장에 꽂혀 있는 뜬금없는 노란색. 심지어 이상 테이프를 사용하지 않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필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며칠 , 책상 위에 동일한 이름의 뮤지컬 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리 구하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새빈은 고민 없이 다음 만남에선 진호가 좋아할 같은 뮤지컬을 보기로 결정했다.

다정하거나 본인을 위하는 행동에 약해 보이는 진호가 마음에 들어 거라는 예상은 다행히 맞아 들어간 같았다.

“미친… 섹시해 보이고 난리….

거기다 중얼거리는 것을 듣자니 진호에게 새빈의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외모만큼은 나름대로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도 있었다.

자신의 위로 살포시 얹어지는 진호의 손을 한번 쥐고, 새빈은 정도면 오랜만에 운전을 했던 보람을 느끼게 주는 수확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먼저 걸어갔다. 진호 스스로가 방금 자신의 멍청스러웠던 반응에 대해 창피해하고 있는 같아 혼자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와… 미쳤다.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하던 진호의 표정은 곡과 동시에 달라졌다. 커진 , 벌어진 , 상기된 볼까지. 극이 진행됨에 따라 박자에 맞춰 발을 까닥이기도 하고, 손을 마주 잡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하는 모양새가 신나고 좋아서 어쩔 몰라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 그게 아닌데…. 그냥 가족들이랑 있지….

그것도 모자라 조금 슬픈 내용이 진행되자 진호는 손으로 입을 막고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작았지만 안타까움을 이기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의 모습만 보고 있어도 어떤 흐름인지 대강 있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반응이었다.

“푸흡-.

새빈은 바람 새는 소리에 다시 진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문 입으로 웃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크게 웃고 싶은 것을 겨우 참은 모양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주제에 환하게도 웃는 진호를 보며 새빈은 가지를 있었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동안의 진호의 웃는 모습은 그냥 입꼬리를 끌어 올린 것에 불과한 같았다.

떠올려 보면 이전의 그의 웃는 얼굴에선 자조적인 느낌이 들기도, 긴장이 느껴지기도 했다. 새빈이 그를 오래 보거나 자주 것은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보여 줬던 것과 다른 놈들과 있을 지었던 진호의 웃는 얼굴은 그랬다.

당시로선 기본적으로 투덜대고 시큰둥한 인상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오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있었다. 그때의 진호는 정말 웃었던 것이 아니라 웃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티켓을 받을 진호가 취했던 행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줄을 때부터 뚱해지기 시작한 표정은 모든 절차를 마친 직원이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으며 ‘일행분이 있으신 같은데 장이 맞으신가요? 하고 물었을 완전히 경직되었다. 의미 없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던 진호는 입을 달싹이다 결국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거기다 직원과 대화하는 내내 눈을 마주하는 행위가 껄끄러운 모양인지 힐긋대기만 , 다른 곳을 보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인간관계에 있어 그렇게 호감을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직원은 진호의 반응에 조금 민망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마무리하는 인사를 했고, 인사말이 떨어지자마자 진호는 곧장 뒤돌아서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시끄러울 정도로 재잘대며 다양한 표정을 지었던 그에게선 전혀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새빈은 없는 애라는 생각을 하며 캐스팅 보드를 보러 가려다 말고 멈춰 서서 끝까지 지켜봤었다. 아무래도 모습이 ‘노력하지 않는’ 진호의 모습인 같았다.

“하하하!

그늘이라곤 없는 순수한 모습이 무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노력하지 않는 일상에서의 뚱한 표정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호감형으로 보이기 위해 만들어 것이 아닌 그의 순수한 미소는 새빈이 어느 사람보다 해맑고 즐거워 보였다.

새빈은 고개를 돌려 무대를 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음악이라면 모든 장르를 불문하고 좋아했다. 웬만한 것들에게 원체 관심이 없고 금방 귀찮아하는 새빈을 그나마 즐겁게 주던 중에 하나였다.

그는 음악을 처음 접했던 때를 떠올렸다. 심장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근거렸던 순간.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역시 괜찮다는 느낌밖엔 들지 않았다.

새빈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진호를 보고 있자니 본인도 느껴 오래된 그때 시절의 두근거림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극이 끝나고 마침 고개를 숙인 진호의 위로 냉큼 엎어졌다.

“이 , 라이… 새….

‘끼’까지 나올 알았지만 진호는 새에서 멈췄다. 진호의 위에 엎어져 있던 새빈은 욕해도 상관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꾸욱 눌렀다. 진호의 심장은 매우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기분 좋아. 옷과 자세 때문에 힘껏 눌러야지 그나마 느껴지는 주제에, 안에서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귀여웠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자신의 심장도 그에 동화되어 세차게 뛰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 박동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할 즈음 타이밍 좋게 2부가 시작됐다. 새빈은 진호가 극에 집중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가 보고 싶은 것은 뮤지컬이 아니라 뮤지컬을 보고 있는 그였다.

“아… , 났다.

진호의 얼굴에 그늘이 돌아왔다. 무대를 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공허함이 묻어났다.

배우들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놀랐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진호가 새빈은 재미없었다.

아니, 재미가 없다기보단…… 그래, 안타까웠다. 아까의 반짝임이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던 무대가 아직은 끝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

무대 인사를 위해 걸어 나오는 배우들을 보며 진호는 다시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빠져들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새빈은 역시 표정이 좋다고 생각했다. 재밌다고는 생각했을지언정 번도 예쁘단 생각을 적은 없었던 진호가 예뻐 보였다.

상기되어 있는 볼과 반짝이는 , 순수한 기쁨을 담은 얼굴이 그를 흥분시켰다. 특히나 예쁜 모습을 그놈들은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성취감까지 차올라 머리가 어질할 정도였다.

진호의 상기된 위에 다시 그늘이 지지 않았으면, 그의 심장이 계속해서 세차게 뛰어 줬으면 했다. 그래서 느낌을 그에게 전염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같으니 같이 심장 박동을 올릴 있는 격한 행위를 하고 싶었다. 그가 잘하고, 좋아하는, 섹스 같은 행위.

“하… 좆나 꼴려….

“예? 뭐라고요?

해맑게 웃으며 자기 위에서 허리를 돌리는 진호를 생각하니 새빈의 중심부가 금방 단단해져 왔다. 그를 보면서는 방금 같은 표정을 지어 주지 않을 테니 커다란 스크린에 뮤지컬 영상이라도 띄워 놓고 해야 하나 싶었다.

새빈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습관대로 몸을 진호에게 밀착시키고 그의 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슬쩍 쓸어내리는 손길에도 흠칫거리는 반응이 귀여웠다. 그대로 새빈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했다.

“뭐? 다시 보러 ? - ! 아까 직원이랑 마주쳤다고요. 알아요? 이제 여기 다신 와요!

하지만 그와는 달리 상식을 갖춘 진호의 맹렬한 잔소리를 들으며 그의 손에 순순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68

새빈은 자기 혼자 병원을 가야 하나, 냉찜질인가 온찜질인가 계속 중얼거리는 진호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진호는 새빈의 솔직한 표현에 속아 제가 당한 일은 잊어버리고 그의 눈치를 보며 쩔쩔맸다.

확실히 진호가 때리면 아프긴 했다. 평소에 사람을 때린 경험이 별로 없는 티를 내듯 조절을 전혀 하지 않고 냅다 지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어를 위해 방을 날리는 정도가 얼마나 상처를 내겠는가. 조금만 만져 봐도 물렁살인 드러나는 몸인데, 거기에 맞은 걸로 병원에 정도였으면 새빈은 벌써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다.

단지 그는 생리적인 현상을 참아 내는 귀찮았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고통을 느끼면 금세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게 진호 눈엔 정말 너무 아파 죽겠어서 그러는 걸로 보였나 보다. 입술까지 잘근잘근 씹어 가며 안절부절못하는 반응도 볼만했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도는 그에게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 그….

그러나 안타깝게도 말이 오히려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말았다. 눈치는 보더라도 말은 하던 진호가 로봇이라도 것처럼 의미 없는 소리만 뱉어 내고 있었다.

새빈은 본인의 말투에 자조가 섞였었는지 곱씹어 보며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지금에서야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의 암흑기라고 불릴 있는 시기의 일에 관한 말이었으니 자기도 모르는 사연 있는 뉘앙스를 풍겼을 수도 있긴 했다.

문제는 애매하게 눈치 있는 진호가 그걸 알아채 버려서 버퍼링이 걸렸다는 점이었다. 저렇게 말주변이 없으면 차라리 눈치가 없거나 무신경한 성격인 편이 살아가기 편할 텐데 안타깝게도 진호는 아니었다.

새빈은 고민했다.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는 필시 진창으로 처박힐 것이다. 아까의 해맑은 표정이 나올 일은, 적어도 오늘은 없겠지. 그러나 이미 얼어 버린 분위기를 다시 살리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결국 생각하기 귀찮아진 새빈은 진호에게 결정을 미루기로 하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진호는 이제 , , 하는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을 앙다문 손만 쥐었다 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마디 던져 반응을 살핀 새빈은 진호가 궁금해하는 같아 말해 주기로 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흔적이 남아 버린 그의 과거를.

“그러나 왕자는 왕이 원하는 새장 안의 왕자가 되어 생각이 전혀 없었답니다. 그렇게 왕자의 몸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지요.

사실 새빈은 이야기를 하는 있어 별로 거리낌이 없는 편이었다. 흉터에 관해서도 딱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지 않았다. 치료를 하지 않고 놔둔 자체도 흉터들을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얻어 훈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정도로, 지금 그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 ‘그냥 그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든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또한 너무 알고 있었다. 그의 과거를 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그를 이해하게 것처럼 굴고는 했다.

물론, 진짜 그를 이해했다기보다는 자기 기준에서 미친놈이라고 여겼던 놈이 이렇게 미친놈이 되었는지, 이해할 있을 같다는 의미겠지만, 아무튼 대다수의 반응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은 친구의 범주에 들어와 있던 명의 놈들과 채예령밖에 없었다.

“그러다 유약한 왕비가 둘째 왕자를 낳았지 뭐예요? 다행히 둘째 왕자는 왕이 원하던, 듣는 우수한 인재였어요. 그제야 왕은 첫째 왕자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첫째 왕자는 염원하던 자유를 얻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해피엔딩!

짝짝짝-.

뒤로 갈수록 말하는 자체가 귀찮아진 새빈은 대충 결말을 짓고 혼자 박수를 쳤다. 당연하게도 진호는 박수를 치기는커녕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새빈은 진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할 거라고 예상했다. 굳이 보여 필요 없던 속살을 보여 이유도 그의 동정심이 경계심을 허물고 조금 유한 태도로 변화시켜 주길 바라서였다.

가장 좋아하게 얼굴을 보게 시점에서, 새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진호의 얼굴과 조금 친절해진 그의 태도를 보고 싶었다. 그를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섹스도 주면 좋고.

“……안아도 돼요?

새빈의 계획이 통한 모양인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던 진호는 자세 그대로 굳어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워낙 조그마해서 혼잣말이라고 느껴진 말은 분명 새빈을 향한 것이었다.

원래부터 동정표를 얻을 생각이었던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반응이 아닐 없었다. 그는 미끄러지듯 소파에서 내려가 바닥에 앉은 채로 진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새빈은 ‘안는다’라는 말엔 포옹의 의미도 있지만, 섹스를 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을 곱씹으며 입꼬리를 씰룩댔다. 힐끗 눈을 치켜뜨고 새빈의 위치를 확인한 진호는 꾸물꾸물 움직여서 오더니 그를 마주 안았다.

새빈은 잠시간 진호의 뒤에 얌전히 손을 올려놓고 때를 기다리다가 손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진호가 하고 싶어 하는 위로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사이 원하는 바를 이룰 생각이었다.

“미안해요.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기 직전이었던 새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예상 범주에 있던 말이 아니었다. 보통 괜찮으냐는 질문이나 지금은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고, 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가끔 물어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진호는 그런 의미로 말은 아닌 같았다. 지금 내가 사과 받을 일이 있었던가? 눈을 굴리며 생각해 봤지만 그런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요, 그런 것도 모르고… 저번에도 오늘도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아니, 사실 이런저런 일이 아니더라도 그러면 되는 아는데, 그래도 아무튼 제가 진짜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는 진호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는요, 형이 아무리 미친놈처럼 굴어도 절대절대 쓸게요. 차라리 욕을 하면 했지, 절대 때릴게요.

“…나 듣는 것도 익숙한데.

“어…… 그럼, 그럼 욕도 할게요. 근데 오늘 같은 일이 있을 제가 격하게 반응 하면 멈춰 주시잖아요. 저도 그대로 당하기엔 울화통이 치미기도 하고…. 아니, 이게 아니라…… 음…아. 그럼 이건 어때요? 제가 아무리 화가 나도 단어는 둥글둥글한 걸로만 쓸게요.

진호는 새빈의 어깨에 괴었던 턱을 뗐다. 그는 조금 거리를 벌려 눈을 맞추고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예를 들면 ‘개짓거리 하지 말고 꺼져 주세요. 하는 아니라 ‘강아지 같은 행동 하지 말고 집에 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정도면 욕은 아니면서도 제가 무슨 심정인지는 있을 같지 않아요?

뭐가 다른 건데. 말이 아무리 다르고 다르다지만 유순한 단어를 쓴다고 해서 공격적인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거기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그대로 들을 있을 리가.

이걸 단순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엉뚱하다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멍청한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새빈은 순간 고민했다.

“그럼 앞으로 그렇게 할게요. 알았죠? 앞으로는 형이 어떤 미친… 아니, 뇌세포가 가출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때리지도 않고, 나쁜 말도 최대한 할게요.

고쳐진 말이 묘하게 기분 나쁘게 들린다는 말해 줘야 할까.

위로를 거라는 생각을 엎다 못해 점점 이상한 데로 빠지는 내용을 들으면서 새빈은 아직까지도 진호의 엉덩이께를 헤매던 손을 늘어트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분위기상, 저번처럼 힘으로 찍어 누르지 않는 이상은 진호가 그의 위에서 허리를 돌리는 일은 없을 같았다.

힘을 써서 할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만약 여기서 힘을 쓰게 되면 아까 해맑은 미소를 다시는 없을 것을 알기에 그냥 관두기로 했다.

, 귀찮아.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할 같다는 판단이 서자 만사가 귀찮아졌다. 진호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인 새빈은 소파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었다. 그리고 남자치곤 말랑말랑한 진호의 팔을 대신 주물거리는 것으로, 힘을 써서라도 풀고 싶다고 외치는 내면을 달랬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진호는 안아 주기 타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조금 떨어져 앉아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옛날에요. 어렸을 , 천식이 되게 심했어요. 최근엔 저도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괜찮아지긴 했는데, 그때는 어디 멀리 가려면 이만한 산소 호흡기 같은 기계를 가져가야 정도였어요.

말소리를 들으면서 새빈은 습관적으로 거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화의 매너가 아니라는 알고 있지만, 어차피 진호도 그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자주 갔어야 했거든요. 근데 저희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갑자기 응급실 가야 아니면 혼자 가야 했어요. 가끔 채예령이나 걔네 부모님께서 같이 주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새빈은 내용에 비해 말투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휑한 거실에 흥미를 잃은 그는 진호의 표정이나 관찰해야겠다 싶어 고개를 돌렸다.

“병원이니까 당연히 가면 싫어하는 일들만 했어요. 검사하고, 뽑고, 치료한다고 이것저것 하고 약도 받아서 먹어야 하고. 근데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싫어했던 그거였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오고 혼자 왔냐는 .

진호는 가벼운 어조에 어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듣기 싫었어요. 아픈 것도 짜증 나는데 의사 선생님이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맨날 번씩 물어보니까. 질문도 싫고, 분위기도 싫고,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도 싫고 아무튼 싫었어요.

새빈이 저를 보는 것을 모르는 건지 느끼면서도 모른 척을 하는 건지 몰라도 진호는 계속 눈을 내리깐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저는 병원을 가기 싫어한다는 이야기인데. 어… 말로 하니까 진짜 별거 아닌 이유네요. 하하, 고작 질문 때문에 스물일곱… 아니, 스물여섯 먹은 지금도 병원을 간다니까 웃기네.

뒷머리를 긁으면서 겸연쩍게 웃는 진호를 보며 새빈은 고개를 기울였다. 자기 나이를 ‘올려서’ 말하는 실수가 흔한 편은 아니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도 진호의 이야기엔 전반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았다.

새빈은 이걸 여기서 짚을 것인가 아니면 듣고 흘릴 것인가 고민했다. 호기심이냐 귀찮음이냐. 그러나 새빈이 결정하기도 전에 고개를 진호가 변명하듯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어, 제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요. , 형도 얘기 주셨으니까 저도 해야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것도 있고요. 뭐라 해야 하지. 맞는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뭔가 그런 얘기하고 싶었어요.

횡설수설하는 아무래도 그가 미간을 찌푸린 비스듬한 자세로 자신을 보고 있으니 오해한 듯했다.

그리고 직후 얘기를 심각한 내용임에도 시종일관 가볍던 어투가 진중하게 바뀌었다.

“저만 해도 어렸을 있었던 때문인지 병원에 간다는 생각만 하면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그런 보면 어렸을 있었던 좋은 일은 기억에 남는 같은데 형한테 , 일이 좋았을 리는 없을 같고…. 저처럼 형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았을 같아서,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진중한 것은 아니고 시무룩했다.

“안아 드린 제가 힘든 기억 떠오를 따뜻한 곳에 있으면 괜찮아질 때가 있더라고요. 이불 가져오긴 그래서 그냥 그렇게라도 따뜻하게 드리고 싶어서…. 절대 괜히 위로한다면서 죄책감 덜어 내려고 했던 아니었어요.

양손을 저으며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진호를 보며 새빈은 진호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가 닥쳐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금방 잊은 것처럼 굴던 것은 정말 겉모습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남들 눈엔 그렇게 보이게 행동해 놓고 결국 안에 담아 두고 스스로를 탓하는 모양이었다.

계속 그런 사고방식을 고수하면 진호는 제가 처한 상황을 얼마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 너무 빤했다.

그건 곤란했다. 새빈은 망가진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쫑쫑아.

새빈은 진호와 자신을 위해 안전장치를 하나 걸어 두기로 했다. 그러나 그전에 한껏 가라앉은 진호의 마음을 달래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빈은 사람이 보통 어떤 상황에 닥쳤을 자기가 받고 싶었던 행동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상기하며 팔을 벌렸다.

“안아도 ?

따뜻하면 기분이 나아지더라. 그렇게 얘기하는 새빈을 보며 진호가 어깨를 늘어트리고 웃었다.

              

69

멍한 표정과 다르게 한껏 벌려진 팔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태도만 봐서는 듣는 마는 하는 걸로 보였는데 제대로 듣고 있었나 보다. 뭔가 따뜻한 느낌이 드는 가슴께를 문지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동받은 거랑 안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괜찮아요. 정도는 기분 좋아질 정도의 얘기도 아니고, 아까부터 형이 하도 주물럭거려서 팔은 뜨거워진 같기도 하고요.

거기다 아까 말은 했지만 정새빈을 안고 있을 밑으로 슬금슬금 내려가는 손이 느껴졌다. 쟤한테 다시 안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내가 자진해서 품으로 걸어갈 이유는 없지. 조금 울적해진 마음은 나중에 핫팩이라도 끌어안고 이불 덮으면 달래질 일이었다.

“…까비.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린 정새빈은 허공에 있던 팔을 그대로 벌려서 소파에 걸쳤다. 나는 녀석이 목을 뒤로 젖혀 천장을 보는 것까지 보다가 슬쩍 핸드폰을 켜서 액정을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지나 있었다.

분위기에 그냥 가라고 하긴 그렇고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같았다.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나도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젖혀 천장을 보면서 음식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정새빈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진호야.

“…왜요.

원래 이게 맞는 건데 이상하게 입에서 이름이 나오면 일단 긴장부터 된다. 쫑쫑인지 뭔지 하는 호칭일 때는 그나마 내가 아는 미친놈 상태라는 거니까 그쪽이 오히려 편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을 불러 놓고 계속 천장만 보고 있는 정새빈의 턱을 보면서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소리를 하려고 저래.

“나는 너랑 섹스 거야.

하…… 이러니까 내가 긴장을 , . 저런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일상 대화를 하는 톤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근데 아마 다른 놈들도 비슷하겠지. 너랑 시간을 보낼수록 . 이건 추측 아니고 확신. 그렇게 수밖에 없어.

“…예?

뭐라는 거야. 이런 바로 신종 저주인가 싶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다른 녀석들도 나랑 짓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거고, 나랑 시간을 보낼수록 마음은 커질 거라는 확신한다는 소리인데….

성적인 접촉을 하고 싶어 한다는 나도 이미 대충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하러 당사자 앞에서 강조하듯이 얘기하는 거야? 나는 입을 열면 욕이 나올 같아 그냥 침묵하는 것을 선택했다.

계속 똑같은 포즈로 입만 놀리는 정새빈을 보아하니 어차피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같지도 않았다.

“쫑쫑이는 아직 누구랑도 진지한 관계가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관두지 않는 이상 결국 진도는 점점 나가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는 그때마다 우리한테 하고 있는 이유에 발목이 잡혀 거부하지 못할 같고.

나는 욕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양만으로 욕을 하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항상 하던 성희롱인 알았는데 흘러가는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문제는 쫑쫑이가 우리와 달리 꽤나 상식적인 사람이란 거야. 생각도 많은데 분명 혼자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겠지. 그러다 정상 범위의 도덕적 잣대를 끌고 와서 스스로를 괴롭힐 같은데…… 그게 걸려.

천장을 보면서 혼잣말하듯 말하던 정새빈이 드디어 턱을 조금 내렸다. 녀석은 뭔가를 가늠하듯 얇게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굳어 버린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마주했다.

“‘쟤네가 아무리 미친놈들이어도 결국 그걸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선택이잖아’ 같은 좆같은 논리로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어 버리면 매우 곤란해.

매우. 그렇게 강조하며 녀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흐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인지 따져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봐, 오늘도. 공공장소에서 찝쩍거리던 미친놈한테서 벗어나려고 발등 밟은 걸로 , 나한테 미안하다며. 저번 일도 그렇고, 너는 남이 행동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 버리려는 경향이 있으면서 네가 행동에 대해선 너무 엄격하달까, 잘못을 극대화해서 생각하는 같아.

말을 끊고 들어오는 정새빈에 나는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녀석이 말이 정확히 맞다고 수는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나는 남을 오랫동안 탓하고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사람에게 어떻게 달라 것도 아니니 해결하지도 못할 감정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가끔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나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내가 상처를 입었더라도 그들을 탓하기 뭐할 때가 있었다. 탓에 내가 행동에 대해서는 꽤나 냉정하게 옳고 그름을 가리고 오랫동안 잘못을 곱씹는 것도 맞았다.

그러는 것치곤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런 것들을 잊지 않고 되짚으며 조금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라도 잘해야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갈 있을 같아서였다.

“…그건 형이 잘못한 맞지만 그래도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수도 있었던 거니까요. 거기다 얘기를 들으니까 그랬으면 됐다고 생각해서….

“보통은 말이야, 합리화를 . ‘그 상황에선 선택이 어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실제로 나는 거기서 네가 말로 뭐라고 봤자 들어줄 생각 없었어. 결국 네가 선택한 방법은 너를 위해선 정말 어쩔 없었던 선택인 거지.

나는 정새빈의 말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한없이 진지해지는 분위기가, 나를 분석하는 눈이 불편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거지? 앉아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그냥 부엌으로 버렸어야 했다. 정새빈이 입을 틈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지럽지도 않은 목을 긁고 있는데 녀석의 손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쫑쫑아. 쓰레기는 우리. 너는 쓰레기통에 굴러 들어온 작은 참새.

녀석은 우리, 라고 말할 때는 스스로를 , 라고 말할 때는 나를 가리켰다. 사소한 행동이 뭐라고 정새빈이 말한 내용이 손가락을 따라 머리에 콕콕 박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정신 빼놓은 맹수 아가리에 머리 처넣는 줄도 모르고 쫑쫑거리며 왔던 순간부터 작은 참새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라곤 아주 사소한 것들뿐이야. 아프게 잡아먹힐 것인가, 아픈 없이 잡아먹힐 것인가.

정면에서 부딪혀 오는 눈이 여전히 불편해서 턱을 빼내려고 고개를 비틀자 낌새를 눈치챈 정새빈이 손에 힘을 주었다. 턱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하듯 노려봤지만 녀석은 웃기만 손에서 힘을 풀지는 않았다.

정새빈은 최면을 거는 사람처럼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삭였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비도덕적인 일들의 원인은 모두 우리야. 네가 하는 모든 비상식적인 선택들은 미친놈들 사이에서 너를 지키기 위함이야. 그러니까 잘못은 하나도 없어. 모든 우리가 쓰레기여서 일어나는 일들인 거야.

무슨 뜻인지 같으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을 들으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뭔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문득 저번에 민선우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쉽게 생각해, 너는 받을 자격이 있어.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그게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놈이 했던 말이 귓가에서 맴도는 같았다.

“민선우가 그랬어? , 소시오패스가 감정까지 생각해 줬다 이거지. 하하, 쫑쫑아. 정말 너만 잘하면 망가질 일은 없겠다. 스스로만 간수하면 되겠네.

“네? 그게 무슨….

민선우를 생각하고 있던 사람 당황스럽게 정새빈이 갑자기 민선우를 들먹거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거기다 뒤를 이은 말들은 그냥 넘길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망가질 일은 뭐고, 스스로만 간수하면 된다는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물어본다고 대답해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말끝을 흐리고, 아까부터 녀석에게 하고 싶었던 반박이나 하기로 했다.

“형. 참새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선택지였어도 일단 쓰레기통에 걸어 들어갔다는 자체가 참새한테도 어느 정도 잘못은 있는 거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결국 쓰레기가 묻을 때까지 거길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참새가 선택한 거니까 자기가 책임져야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말이 끝나자마자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정새빈이 정말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걸어 들어온 그래, 그건 잘못이라고 치자. 근데 쫑쫑아 벗어난다는 선택지는 없다니까. 아까 내가 말해 줬잖아. 잊지 말라고도 했는데 벌써 기억이 ?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매우 아프고 잡아먹힌다’ 당첨인데 어디 군데 부러진 상태로 감금당하고 싶어?

“부러… ? 감금이요?

“영악하게 굴어 쫑쫑아. 네가 원하는 대로 속도 조절하라고 우리가 목줄도 쥐여 줬잖아. 지금처럼 얌전히 자리에서 적당히 반항하고 까불면서 지내. 괜히 우리가 허용한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위해 꽂아 놓은 안전핀을 손으로 버리는 건데, 굳이 그러고 싶어?

이번에도 정새빈의 위로 민선우에게 들었던 말이 겹쳐 들렸다.

 

‘도망치지만 않으면 존중할 거예요.

 

“도망이라…. , 나중에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때가 왔을 , 내가 지금 말이 믿기지 않거든 한번 도망치는 척해 보든가. 그럼 네가 ‘선택한 나’라고 말한 것이 얼마나 건방 건지 있을 테니까. , 근데 진짜 도망치지는 말고.

그럼 나부터 부러트리고 싶어질 같아서.

정새빈은 살벌한 말을 덧붙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평온한 얼굴과 밝게 비추는 전등 , 앞머리가 사라락거리며 눈썹을 가리는 모양새까지 더해져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걸 보고 있는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했던 말들을 지금 당장 이해할 필요는 없어. 머릿속에 입력해 놨다가 나중에 네가 처한 상황과 네가 했던 선택들에 대해 회의감이 들고 자기혐오가 들면 떠올리라고 주는 말이니까. 나는 참새가 쓰레기통 속에서도 계속 반짝반짝 살아 있어 줬으면 좋겠거든.

죽어 인형이 되지 말고. 정새빈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드디어 턱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거실에 대자로 눕더니 눈을 감아 버렸다.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며 나는 방금 했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부서트리고 어쩌고 하는 것이었지만 정새빈이 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전의 내용인 듯했다.

앞으로 녀석들과 엮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책임은 내가 아니라 녀석들에게 있다는 .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혹여나 내가 스스로를 자책하다 자멸할까 , 혹은 도망갈까 염려가 되나 보다.

나는 애초에 선택권이 없다는 것에 화를 내며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래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고 책임을 주려고 한다는 맥락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아니, 사실 중에 헷갈려 때가 아니라 미친놈들과 좆같이 엮였다는 사실에 진절머리를 내며 지금이라도 얼른 멀리 도망치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집을 떠날 수가 없었고, 그러기 싫었다. 예령이와의 관계를 끊기는 싫었고, 가족과 멀어지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눈을 감았다. 그들이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미친놈들이라고는 생각한다. 틈에 있으면 분명 무슨 사달이 나도 나겠지. 지금도 당장 앞에서 나랑 섹스 거라고 저렇게 확정지어 말하는 새끼가 있는데 뭔가 일이 나지 않을 리가 없어.

그러나 멀리 떠날 생각이 없는 시점에서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한 나머지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는데 정새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쫑쫑아, 쉽게 생각해. 좋게 좋게, 둥글게 둥글게.

민선우도 했던 . 나도 라이온킹을 때마다 생각했던 . 쉽게, 좋게. …그래, 씨발.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철저하게 옳은 선택만 왔다고.

쉽게 생각하자 김진호.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흘러가는 대로 냅둬 보자. 그러다 보면 어떤 결말이든 나겠지. 그냥 이대로 가면 혹여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져도 또한 구해질 것이 확실해 보이니 그냥 그걸로 됐다 하고 넘어가는 거야.

그냥 번이고 다짐했던 대로 시기를 넘길 때까지 나는 마음만 간수하자. 그러다 후에 선택에 의해 숨이 막혀 오면, 그럴 때가 오면 정새빈의 말처럼 녀석들의 탓을 하면서 견뎌 내야겠다.

그렇게 나는 복잡하게 엉킨 머릿속 실타래를 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잘라 버렸다.

              

70

딩동.

- 누구세… 어머, 어머!

- 엄마?!

.

“진호야!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어… 이거 부서진 아니에요?

나는 급하게 나와 숨을 몰아쉬는 아주머니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문을 살피는 척했다. 정말 오랜만에 것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반겨 주실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힌 문은 멀쩡해 보였다.

“지금 그게 중요하니? 부서지면 하나 새로 달면 되는 , 놔두고 얼른 들어와. 그동안 하면서 지냈길래 먹으러도 !

“요즘 바빠서요. 지내셨어요?

“네가 소식이 없어서 지냈어, . 어쩜 문자 통도 보내고 말이야.

내가 어디 버릴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얼른 안으로 밀어 넣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결국 웃어 버렸다. 현관에는 달려 나가는 아주머니를 뒤따라온 것처럼 보이는 채예령이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말은 괜찮다면서도 내심 문이 신경 쓰이셨는지 요리조리 살펴보면서도 타박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녀석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자 채예령도 같이 어깨를 으쓱였다.

“엄마 정도론 부서져요. 맨발로 나가 계시지 말고 들어오세요.

“아니 부서졌을까 그러는 아니고…… 흠흠. 진호 들어가고 하고 있어! 지냈어? 이렇게 살이 빠졌어, 엄…줌마 속상하게. 왔으니까 먹고 . 아줌마가 오늘 왠지 고기반찬이 하고 싶어서 마침 돼지고기를 놨지 뭐니? 진호 김에 제육볶음 해야겠다!

채예령이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짓던 아주머니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 어깨를 밀어 거실로 향했다. 명랑한 말소리를 들으면서 들어온 집은 바뀐 것이 없어서 오랜만인데도 어제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엄마 구워 주신다고 했잖아요!

“시끄러! 원래 그냥 구워 먹는 거보다 양념해서 먹는 맛있는 법이야.

그지, 진호야? 하고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장난기 어린 어투로 말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마주치며 킥킥대는 우리를 보면서 채예령은 네네, 아무렴요, 라고 중얼거리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삐돌이 새끼. 맨날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아주머니에 관해선 어렸을 때부터 금방 삐지곤 했다. 그래도 가만 놔두면 풀릴 것을 알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아주머니를 향해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준비하실 거면 도울게요. 스승님 요리하시는데 제자가 수는 없죠!

“에이, 진호 하산시킨 지가 년인데! 청출어람이라고, 이제 가르치는 아니라 내가 배워야 정도잖아. 그러지 말고 예령이랑 방에 들어가 쉬고 있어. 엄…줌마가 줄게. 진호 오랜만에 왔는데 편하게 있어.

손을 내저으면서 부엌으로 가시던 아주머니는 눈치를 살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까는 표정을 봐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어색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래도 때문이겠지.

졸업이 확정된 것을 축하한답시고 채예령이랑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가 아주머니에게 호칭에 대해서 진상 짓을 일이 있었다.

그게 졸업식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체감하기엔 년이 훌쩍 넘은 일인 데다 뒤로도 만났다는 기억도 있었지만, 아주머니에겐 이후 나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하아, 회귀 정신이 없긴 했다지만 그런 중요한 것도 잊고 있었다니. 그래서 아까 나를 유독 반겼구나. 사실을 깨닫고서야 아까 아주머니의 눈에 서려 있던 안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에도 여기 다시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번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회귀 전에 뵀을 때보다 훨씬 눈치를 보시는 같아 많이 죄송했다. 하지만 그때 했던 말은 진심이었으므로 나는 전과 같이 그냥 멋쩍게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에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요리 연구가를 제가 어떻게 가르쳐요. 평생 배워도 모자랄 같은데. 그리고 다른 몰라도 제육볶음은 정말 아주머니 손맛 따라잡겠어요. 얼마 전에도 했었는데 맛이 나더라고요.

“아니야, 진호 진짜 재능 있어. 오죽하면 내가 중학교 밑에서 일해 생각 없냐고 물어봤겠니. 학생들보다 네가 훨씬 빨리 배우고 센스도 있어서 아줌마는 아직도 아쉬워.

일부러 능청스럽게 아주머니를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마자 나를 과분하게 칭찬하는 말이 돌아왔다. 윙크까지 하면서 얘기하시는 모습에 나는 그냥 웃어 보이며 냉장고에 있는 고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전달하려던 나는 이어진 말에 나도 모르게 얼어 버렸다.

“네 엄마만 아니었음 내가 진작에 옆에 끼고 놔줬을 거야, .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멀거니 서서 일을 떠올리는데 옆에서 하얀 손이 나오더니 고기를 갔다. 채예령이었다.

웃은 녀석은 등을 한번 치더니 아주머니가 계신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진호 사회복지학과 나왔거든요? 요리하고 싶었으면 요리 관련 학과를 갔겠지. 괜히 친구 곤란하게 하지 말고 아들이 아니라 아들내미 .구가 좋아하는 제육볶음 얼른 주세요. 배고파.

“아니 아쉬우니까 그러지. 아쉬워서.

아주머니는 채예령한테 고기를 받으면서도 계속 나를 보며 혼잣말하듯 우물거리셨다. 채예령 덕분에 때리던 것에서 빠져나온 나는 말에 대충 웃음으로 답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슬슬 벗어나야 때다.

채예령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나는 채예령만 있게 배꼽 밑에다 손을 바짝 붙이고 녀석의 방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다행히 바로 눈치챈 채예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머니를 돌려 주방으로 밀면서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네네 알았습니다! , 엄마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방에 가서 오랜만에 게임이나 하자.

“쓸데없는 소리가 뭐야 채예령! 엄마한테 정말 하는 소리가 없어. 되면 부를 테니까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놀고 있어.

다행히 아주머니도 우리를 붙잡아 놓을 생각은 없으셨는지 밉지 않게 흘겨보시면서 컵을 건네주고 바로 요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채예령이 컵을 받아 드는 것을 보고 나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와 콜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거실과 마찬가지로 매우 익숙한 채예령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나 그랬듯 채예령은 책상 의자에 앉고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야 앉아 있어. 누우면 게을러지잖아.

“시끄러. 원래 게을러.

매번 똑같은 행동에 매번 똑같은 잔소리, 똑같은 대답. 현관에서부터 여기 오기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게 별거 아닌 같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며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는 것을 미룬 날들과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망설이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번은 와야 , 그냥 와서 충전이나 하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호 취직 활동은 하고 있는 거야? 학원 다닌다면서 토익 시험은 언제 ?

하… 사람이 여운에 빠져 있을 틈을 주네. 이런 거까지 여전할 필요는 없는데 정말 한결같은 놈이다, 저놈도.

“학점이 좋긴 해도 이런저런 점수 만들어서 붙이면 명문대 타이틀 그거 먹힐 거야. 일단 대기업은 당연히 넣어 보는 거고, 탄탄한 중소기업 찾아서 거기도 넣어 보고….

“나 민선우 형네 집에 취직됐어. 지금은 사정상 출근 하고 있지만 조만간 거야.

이대로 가다간 어느 기업에 넣어야 하는지까지도 일장연설을 기세길래 도중에 말을 끊고 민선우네 취직한 사실을 알려 줬다. 잔소리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속셈이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선우형네? 뭘로? …설마, 청소?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어미에 나는 눈을 떠서 녀석을 올려다봤다. 한껏 찌푸린 얼굴.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표정이었다.

“그거랑 요리랑 외에도 이것저것.

“…하아 ……진호야.

아씨 지뢰 밟았네.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는 채예령은 잔소리 경보 3단계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잔소리가 쏟아졌다.

“요즘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고생하고 들어간 대학에서 공부한 아까워? 전공 살리란 말은 해도 남들 하는 사회생활은 번쯤 봐야지. 번듯한 직업이라는 말이 있겠어, 진호야. 청소가 나쁘다는 아닌데 직업으로는 아니지 않아?

“그게 뭐가 어때….

“지금 시기 놓치면 일반 회사는 들어가기 힘들어. 그만큼 공백이 생기는 거고, 나이 차면 신입으로 받기 꺼려하니까. 있을 일단 정석대로 살아 보고 그래도 맞으면 다른 길을 가야지 애가 벌써부터…!

말은 들을 생각도 없이 우다다다 잔소리를 대던 녀석은 내가 귀를 막는 제스처를 보이고 나서야 폭격을 멈췄다. 마침 점점 언성이 높아지던 터라 입을 다문 채예령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녀석이 한숨을 내쉬면서 진정한 같길래 다시 손을 내리고 슬쩍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열자마자 채예령은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도 너한테 소개할 내용 들어서 조건 좋은 대충 알아, 아는데 그래도 분야가 분야잖아.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로 소개해 거지 직업으로 하라는 아니었다고. 직업 너네 어머니한테 말씀드릴 있어? 요리도 하게 하셨던 분인데….

새끼 넘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잔소리하는 거에 치중해서 나오는 대로 뱉고 있는 같았다. 나는 이쯤에서 진짜 멈춰 줘야겠다는 생각에 채예령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해라.

눈은 계속 감고 있었기에 녀석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바로 조용해진 걸로 봐선 자기가 방금 무슨 얘길 했는지 본인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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